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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유랑의 삶/아프리카.킬리만자로

[아!킬리만자로] 12/10 : 등산 3일째 (호롬보 산장에서 고소적응)

by naebido 2005. 12. 29.
2005. 12.10. (등산 3일째)
▶ 일 정 : 고소적응을 위해 호롬보 Hut에서 하루를 머뭄

오늘은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간 호롬보에서 머문다.

Am7:00 가 조금 안된 시각. 부스럭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역시나 아침형 인간인 경희가 이미 일어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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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장은 6인1실. ㄷ자로 된 구조의 2층형 침대
(자기 전 뜨거운 물을 물통에 받아, 침낭속에 넣고 껴안고 잔다.)

며칠전부터 생긴 버릇. 일단 몸 상태부터 살펴본다.
밤새 스멀 스멀 있던 두통도 없고
목이 조금 아픈걸 빼고는 대체로 컨디션 굿이다.

근데 경희가 왠지 똥마련 강아지마냥 서성인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상황파악을 해보니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나가서는
너무도 멀쩡하게 산책을 한다던가, 몸풀기 운동을 한다던가..하는
진정. 결단코. 산악인 체질인 석화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

그렇다.. 석화는 우리 방 여자 5명을 가두고 나간 것이다. -.-;
(착한 석화, 자기딴엔 모두 자고 있으니 위험할까봐 밖에서 걸쇠를 ㅋㅋ )

이제올래나 저제올래나.. 석화야 어디갔니!
갇힌 우리는 창문에 매달려 지나가는 사람이 있기를 고대했으나
맨 끝 방이라 이곳까지 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시간은 흐르고.. 화장실 급한 경희는 낑낑대기 시작하고..
결국 그렇게 한시간을 갇혀 있은 후에야
대원중 한사람인 경호씨에 의해서 극적으로 구출될 수 있었다. ^^
(경호씨이이이!!! 고래 고래 외치던 우리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ㅋㅋ)

Am8:00 구출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이야!! 이건 완전 딴세상이다.
구름하나 없이 쨍하는 날씨에 새파란 도화지같은 하늘.
(아니, 사실 구름은 우리들 머리 위가 아니라 발 아래에 놓여있었다)
방 앞으로는 세네시오들이 늘어서있고...
어제 부슬 부슬 비오던 그 곳이 맞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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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리만자로가 보이고.. 산위의 저 하얀색은 눈발이 내리는거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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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장의 우측으로는 마웬지 봉이 보인다.

씻고 싶은 맘이 굴뚝인데,
차가운 물이 닿으면 고산병이 오기 쉬워 절대 머리는 감지 말라고한다.
미치겠다. 머리 못감은 지 벌써 3일째인 것이지.
(이후 하산시까지 그 누구도 모자를 벗을 수 없었다는....ㅍㅎㅎ)

산에 왔으니 산의 법을 따르는 수밖에..
대신 이를 열심히 닦고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세수하다 손 동상걸리는 줄 알았음)

아침을 먹고,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고나니 시끌 시끌 소란하다.
물어보니 호주 학생들인데 밤새 정상등반하여 하산한 팀이라한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데 내심 많이 부러웠다.
반팔입은 그들. 확실히 그들은 체력적으로 더 튼튼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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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우흐르픽까지 등정을 마치고 하산한 호주 팀

산장의 공동 식당건물 앞에는 살짝 넓은 마당(?)이 있는데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거나 얘기를 나누거나 그냥 앉아있거나.. 하며
각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다.

만다라와는 또 달리, 확실히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기 때문에
모든 움직임이 느려져있다.
마치 시간도 느리게 가는 것만 같은 기분.

점심을 먹고나니 오늘 저녁 행사를 위해 각자 연애편지를 써오라한다. (-.-;;;;)
망연자실하여 일단 방으로 돌아온 나. OTL

첨엔 다들 건성건성 장난스러울 것 같더니..
나중엔 모두 어찌나 진지해지던지.. 사생대회 나온 사람들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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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무래도 혼자 장난스러우면 안될듯한 분위기.
"연애"라는 단어에 몰입되어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겐 차마 못쓰고
결국엔 쌩뚱맞게도 난데없는 글짓기를 시작한다.
(너무도 사랑하는 조카 다혜에게 쓸것을..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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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글짓기에 영감을 준, 방 앞에 펼쳐진 세네시오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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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른 영감을 준 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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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마감시간이 임박했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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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김없이 비가오기 시작하고... (근데 경희, 니 게서 머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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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가 시작되었다. (엄홍길 대장님)

잠보송, 킬리만자로송 노래도 부르고,
너무 듣기 좋던, 병휘님의 "나란히"도 감상하고,
연애편지 대상도 발표하고,
영상편지보면서 내비도 눈물 콧물 짜고.. (언니, 고맙다는 말 못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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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대 깃발에 한마디씩 하고싶은 말도 적고..

그렇게 호롬보에서의 두번째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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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마지막에 있던 우리들의 숙소


ps1. 입맛도 식욕도 없어 저녁식사를 거의 못했다.

ps2. 코안에서 코피가 나기 시작. 미세혈관들이 터지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나만 그런게 아니더군.)

ps3. 내일 원래 원정대의 목표는 4,000미터. 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지만
정상 도전의 치명적인 위험 때문에 제작진과 대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말이 4,000이지 이곳에서도 라이터가 잘 안켜질 정도로 산소가 급격히 적다.)

ps4. 나는 정상에 도전하겠다고 번쩍 손을 들었다.
그러나 경희랑도 상의하고 심사숙고 끝에 내일 4,000미터까지만 도전하고
이후 정상 도전은 안하는 것으로 맘을 바꾸었다.
정말이지 전혀 가늠 되지 않는, 처할 수 있는 위험이 너무도 두려웠기때문이다.
처음엔 속상했지만, 4,000미터가 어디인가!!
마웬지 근처의 Zebra Rock도 보고, 사진도 찍고, 근처 산책도 하고..
경희와 남아있는 사람들과... 그렇게 보내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속상함은 곧 더이상 긴장 안해도 되는 홀가분한 하루에 대한 기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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