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2.12. (등산 5일째) ▶ 해발 5,895m 정상을 향하여.. 긴장한 탓인지 깊게 잠들지는 못하고 2~3시간쯤 잤을까. 신중하게 몸 상태를 체크한다. 가벼운 두통과 메슥거림이 계속 되고는 있으나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 나름 상태양호라 판정하고... 올 10월 초 설악산을 등산하면서 산에서의 추위를 톡톡히 경험한터라 몸이 둔할정도로 단단히 껴입는다. 출발을 앞두고 늦은 저녁을 먹는다. 고도가 많이 높아 소화가 잘 안되므로 많이 먹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먹고 싶어도 영.. 들어가지가 않는다. 대충 허기만 면하고 따뜻한 차 한잔을 겨우한다. (이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나중에 산 위에서 혹독한 추위만큼이나 나를 괴롭혔던 건 절절한 배고픔이었다. ㅠ.ㅠ) [실체가 안 보이면 두렵기 이전에 일단 더듬어 보기 마련인걸까.] 이제 정상까지는 화산재로 이루어져있어, 머랄까 길이 줄줄.. 밀린다. 그나마 밤이 되면 그 날림이 좀 단단해져서 딛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하고 밤부터 아침까지의 기후가 가장 안정적이라, 이렇게 채 몇시간을 못 쉬고 바로 정상으로 도전하게 된다.... 라고는 하나! 내려오고 나서 느낀건데.. 이 산을 밤에 출발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실체가 눈으로 안보이기 때문일꺼다. 즉, 아마도 이 산을 낮에 출발하라고 하면.. 단언하건데 결단코. 절대. 올라가고 싶지 않을꺼다. 높이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거나, 적도 아래 어떻게 빙하가 있을 수 있는지, 빙하가 녹고 있다는데 몇년안에 녹을건지를 연구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풀 한포기 없이 황량한 흙과 돌 무더기로 이루어져 전혀. 한개도. 이쁘지 않은 벌거숭이에 설사 시도한다해도 푹푹 발이 밀려 도대체가 진전이 없고 금방이라도 꼬꾸라 질 것 같은 급경사의 이 괴물 같은 산의 실체를, 그 두려움을 두 눈으로 본다면 말이다. [12월 11일 Pm 11:00 : 헤드렌턴을 켜고 정상으로 출발] "자, 정상도전 할 사람 모이세요!" 엄대장님의 목소리. 한명 두명 모이는 대원들. 그렇게 모두 20여명. 그 속에 내가 끼어있었다. 깜깜하고, 추워지고 있었다. 보수적으로 잡은 내 목표는 5,000미터. 한스메이어 동굴까지. 그러나 맘 한켠엔 '올라보고 나서...' '갈 수 있는 곳까지..' 미련이 또아리를 튼다. 팽팽한 긴장과 흥분 속에서 정상으로의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한명 두명.. 시간이 흐를 수록 고소를 호소하며 하산하는 대원들이 늘어가고. 저멀리 꽤 먼 거리에서 일렬로 반짝이는 주황색 헤드렌턴 불빛이 나 역시 일행들로부터 많이 뒤 쳐졌음을 인지하게한다. 오로지 발 밑을 비추는 헤드렌턴 불빛에 의지하여 60~70도 경사의 화산재 더미를 지그 재그로 올라가는길. 그저 "올라가고 있는 행위" 그 자체에 몰입할 뿐이었다. [5,000미터 한스메이어 동굴에 도착]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해발 5,000m 한스메이어 동굴에 도착한다. 이곳은 독일인 "한스메이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비박한 곳이라한다. 앉아서 물도 마시고, 행동식도 먹고 좀 쉬고 있으니 조피디님과 가이드가 도착한다. 몸을 녹이자고 앉은 것이 오히려 더 추워진다. 숨이 가쁘긴 했지만, 이때만해도 나는 몸상태가 과히 나쁘지않았고 경희 역시 괜찮아 보였다. (지금생각해보니 다만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를일이었다.) 채이사님은 고산등반 베테랑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의심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직 죽을 만큼 힘들지 않았기에 더 올라가고 싶다.. 는 욕망이 꿈틀댔다. 나는 모르고 있었던거다. 결국 죽을만큼 힘들게되면.. 내려갈 수 조차 없다는걸.. 다시 선택의 순간이었다. 채이사님은 "이만 내려가는것도 고려해봐" 라고 물었고 내 의지를 확인하시자, "그래, 현정씬 갈 수 있겠어. 정상까지 가자구!"라며 용기를 주셨다. 이제와서 고백하건데, 만일 채이사님께서 "고려해봐"라고 하시지 않고, "현정씨는 이만 내려가야겠어. 더 가는건 무리야. 위험해."라고 단호하게 하셨다면 나는 내려갔을꺼다. 그만큼 나는 채이사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 우리중 경험해 본 분은 그 분밖에 없었기에... 채이사님의 그 말은 내게서 '두려움'을 걷어냈고 '내가 오를 수 있을까.' 라는 맘속의 의심은 '나는 오른다.' 라는 명제로 각인이 되어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45분] 어쩌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선두와의 무전은 거리가 꽤 멀어진 탓인지 끊겨 있었고, 경희는 추위와 고소로 인해 자꾸 눈을 감고 의식을 순간 순간 잃었고, 채이사님 역시 말씀은 안하셨지만 심각하게 추위에 노출되 있었다. 나역시 졸림과 극심한 체력 소모로 고생하고 있었다. '잠들면 죽는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으아~!" "으~~으~~!!!!!" 힘든 육신과의 사투를 벌이는 외마디 외침이 경희와 나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고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그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웅얼댔다. 해가 뜨면 몸을 추스리고 내려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까진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근데 내리막이 쥐약인 내게.. 그 각도를, 그 깜깜한 밤에 내려가는건.. 도저히 정말 자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택한건, 살기 위해 걸어야 하는 방향은 아래로가 아니라, 그저 계속 위로 향하는 것 뿐이었다. Am 5:30 해를 기다리며 울다.. 물병을 채워왔던 따뜻한 물이 꽝꽝 얼음으로 변해있었다. 지구는 둥글다는 걸 증명하듯 코앞에 빽빽히 수 놓아 떠있던 별들도 사라지고 여명이 붉게 물들무렵.. 우리는 주저 앉았다. 나는 추위도 추위지만.. 정말.너무.미치게. 배가 고팠다. -.-;; 혈당이 뚝뚝 떨어지는게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벌벌대고 손이 떨렸다. 주머니에서 한개 남은 영양갱을 꺼냈다. 혹시 또 몰라 반만 베어 무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ㅜ.ㅜ 그냥... 진실로 너무 외로웠다... 해 뜨는 시각은 6시 15분. "해야 떠라.. 빨갛게 해야 솟아라아~" 입으로 웅얼거리며 평생에 그토록 해를 기다린 적이 있을까. 경희와 채이사님은 서로를 감싸안고 체온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나는 혹시나 하는 죄책감이 밀려와 그저 경희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가까운 어딘가에서 치환 오라버니와 종인씨도 그러고 있었으리라... Am 6:15 평생 가장 감동적인 일출, 그리고 다시 정상을 향하여... 영원히 안뜰 것만 같았던.. 1년도 더 넘는듯 길게 느껴진 시간.. 그리고 드디어 해가 떴다!! ㅠ.ㅠ 평생 잊지 못할 그 순간. 아..! 그 장엄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 그 일출을 찍겠따고.. 카메라를 꺼냈으나, 추위로 동작하지 않는 카메라. 아쉬웠다. 이젠 살았다는 안도를 느꼈다. 몸이 조금 녹자, 우리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내려가지 않고 또 오르기 시작한건.. 우리 머리 위로 저기, 한 100미터 되는 곳 길만스포인트에서 예의 그 익숙한 주황색 고어텍스 잠바들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기다리고, 바라보고, 응원하고 있는 기운이 느껴졌기때문이다. 자신과의 사투였다. 어느새 우리 4명의 대열도 흩어져, 좀 더 위에 경희-채이사님이, 그리고 그 아래에 나와 바리키가 오르고 있었다. "바리키, 내가 갈 수 있을까? 난 이제 완전 탈진인거 같아. 난 자신없어. 그냥 내려가고싶어." 빤히 바로 코 위에 일행들이 보이는 곳에서 나는 말했고, 바리키의 대답은 간단했다. "너 갈 수있다. 너 정말 대단하다. 뽈레 뽈레. 나를 믿어라." Am 7:10 해발 5,681m 길만스포인트에 서다! 바리키 폴대 끝을 부여잡고.. 끙끙 거리며.. 마침내.. 마침내.. 해발 5,681m에 섰다. 도착후 내가 처음 외친 소리 "경희야!!!" 나보다 몇 분 앞서 도착한 경희를 찾았고, "경희야 미안해.." 평생처음으로 슬프지 않아도 소리내어 울 수 있음을 경험했다. 경희를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채이사님과 포옹을 나누며 또 한번 와락 울었다. 정상인 우흐르픽까지는 1시간 남짓을 더 가야 했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고 후회도 없었다. 이곳이 바로 "나의 정상"이었다. 12/11 아침 7시 호롬보를 출발하여 키보에 도착, 다시 밤 11시 출발하여 12/12 아침 7시에 '나의 정상'에 올랐으니 꼬박 24시간만의 일이었다. ps1. 경희 & 채이사님께... "다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미련 - 어쩌면 제 마음의 장애때문에 - '죽을만큼 힘들 때까지..' '스스로 인정할 때까지'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저를 시험하려다.. 경희, 채이사님 위험에 처하게 했죠.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힘들면 포기해도 됨을, 그게 부끄러운게 아님을.. 배웠습니다. 두꺼운 제 마음의 유리벽이 조금은 얇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ps2. 내려오던 길, 긴장을 풀고 급격하게 고도를 낮춰서인지 드디어 내게 고소가 왔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극심한 두통. 뇌가 흔들리듯 아팠고.. 정말 머리를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의약품 - 물파스!를 머리에 미친듯이 발랐다는, -.- 어디선가 읽은 글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결국 키보산장이 저~~아래 보이는 곳에서 포터 4명에 의해 업혀 내려왔고 호롬보산장까진 구루마 신세를졌다. ps3. 내려와서 들으니 간 밤의 기온은 체감온도 영하 30도가 넘었다 했다. 완전 탈진한 경희는... 키보에 도착한 후 링거를 맞았다. ㅜ.ㅜ ps4. 2006년 1월1일 아침 9시 KBS1에서 킬리만자로 이야기가 방영됩니다. ☞ VOD보기: "신년특집 2006 희망원정대 아! 킬리만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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