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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취미생활/영화 공연 전시

[영화]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ㅇ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ㅇ 원제 : Kirschbluten - Hanami
ㅇ 감독 : 도리스 되리 (Doris Dorrie 독일)
ㅇ 상암 CGV


간만에 잔잔한 생각들로 꽉 차게 하는 영화.
좋다.
제목이 너무 잔잔해서 지루하지나 않을까.. 싶었는데,
야금 야금 씹어 먹어야 하는 영화같다고나 할까.
(음.. 씹어먹는..이 좀 이상하네. 머랄까 되새김질?? 아 것도 아니야. 아.. 이 표현력이라니 ㅜ.ㅜ ) 
암튼 대사 없는 장면 장면들조차 말로 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가슴에 닿는다.

감독이 누군가 했더니 오오.. '파니핑크' 만든 분이다.
나의 추천 영화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파니핑크! 특히 그 영화는 노래도 참 좋았지. (농~~ 리아더 리옹~ ♬ ^^)
연극, 영화뿐 아니라 심리, 철학까지 전공을 했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인간 내면의 섬세한 부분을 끄집어 내어 생각해보게 하는 독특함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노부부다. 
남편이 시한부라는 걸 아내가 아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남편의 성격과 아내와의 유대를 보여주는 몇가지 장면들의 울림도 꽤 인상적이다. 매일 매일 똑같은 시각에 집을 나서고, 고양이가 지나가고, 기차, 돌아오는 골목길, 고즈넉한 시골, 오리가 지나가고, 문을 열고, 모자를 벗고, 외투를 벗고, 아내가 스웨터를 입혀주고, 슬리퍼를 준비해주고, 양배추 롤을 같이 먹고... 이 모든 사소한 것. 너무도 사소해서 오히려 나중엔 더욱 그리워질 것들. 아.. 나는 영화.. 이런 게 좋더라. 

암튼 아내는 삶이 얼마 안 남은 남편을 데리고 도시(베를린)에 사는 아들, 딸내미한테 여행을 간다.
그러나 이미 부모 품의 아이들이 아닌 자식들은 부모님의 급작스런 방문이 '먼가 해드리긴 하겠는데.. ' 바쁘고 시간은 없고, 부담스럽고, 그런 부담스러움을 느낌이 자식된 도리에 또 죄송스럽다.
부부는 둘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오히려 아내가 먼저 숨을 거둔다.
그야말로 갑작스런,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이별.
밀물듯이 다가오는 아내의 부재...

아내는 일본의 부토 무용수를 꿈꿨었고, 후지산을 동경했고, 일본에서 살고 있는 막내 아들을 보고 싶어했다.
결혼, 아이들, 남편.. 대신 이 땅의 대다수의 어머니들처럼 포기한 게 많은 아내..
남편은 아내의 옷가지를 챙겨 도쿄로 떠난다. 평소 즐겨입던 옷가지, 목걸이, 치마, 기모노 잠옷.
미친듯이 복잡한 도쿄에서 원룸형 오피스텔에 오도커니 아버지를 남겨 놓는 바쁜 아들에게 아버지는 거추장스러움과 동시에 또 부담이다. (역시나 먼가는 해야겠으나 할 시간은 없으므로)
그곳에서 남편은 아내처럼 밥을 만들어 먹이고, 청소를 하고, 아내 옷을 코트 속에다 입고서는 아내에게 도쿄 구경을 시킨다. 그리고 어느날 사쿠라가 넘실거리는 공원에서 18살의 친구를 사귀게 된다. (최강희를 닮은 부토 무용수)
그 친구와 대화를 통해 부토를 알게 되고, 아내를 느끼고, 아내의 존재와 교감하고, 아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한 후지산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후지산.
마침내.. 후지산이 거침없이 모습을 드러낸 그 새벽,
그림자 무용의 부토처럼 후지산의 그림자가 비치는 호숫가에서 아내와 함께 부토를 추며 그도 세상을 떠난다.

시종일관 조용..하고 담담하지만 가슴이 많이 아프면서도 따뜻한 영화다.
사랑후에 남는 것은 그 상대가 나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었는지에 대한 기억이다.
그 기억은 그래서 늘 아프다. 되돌려 줄 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한가지 이 영화를 보면서 또 들었던 생각은,
부모-자식은 오히려 가족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더 가까울 수 없는 관계구나 하는 것. 
영화속에서도 베를린을 드라이브 여행시켜드리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부토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아내가 죽은 후 남편을 안아주고 다독거리는건 자식들이 아니라 딸내미의 애인이고.
일본에 가서 내 속내를 터놓고 이해를 받고 위안을 받는건 아들이 아니라 떠돌이 부토 댄서이다.
어찌보면 참 외로운 우리들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반쪽을 그렇게도 갈구하는지 모른다.

간만에 좋은영화. 추천. 근데 이런 영화는 왜 상영관이 몇개 안되는거냐.
(CGV는 상암,오리에서 3/18까지하고, 씨네코드선재에서 3/25까지 한다)
부부싸움을 한 부부라면 더욱 강추다
나오는 길에 저절로 손을 꼭 잡게 될꺼다. '우리 이렇게 둘이라 참 다행이구나' 싶을꺼고, 얼마 안남았을지도 모르는 시간 '많이 사랑하자' 하는 맘이 들테니.


▲ 예고편

▲ 베를린에서 찍은 가족사진.  (늘 그렇듯 단편 단편은 행복해보이는 파편이다. 실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족 하나하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보면 그리 아는게 없는게 또 가족이다)

▲ 아내와 함께 시내구경을 시켜주고, 부토를 보고, 대화를 나눠주는.. 딸내미의 여자친구

           ▲ 여보, 당신도 봐요 (아내가 즐겨입던 옷을 입고 생전 가보고 싶어했던 도쿄를 보여주는 남편)

▲  도쿄 공원에서 만나게 되는 부토 댄서.류. 하루 하루 만남을 더하면서 둘은 소통한다.

▲ 아내의 요리법, 양배추 요리.. 설명하기 어려워하는데 류는 이렇게 행위예술로 표현하고 알아듣는다. 

▲ 그에게도 찾아온 세상과 이별의 순간, 후지산 그림자를 드리워진 호수에서 아내와 함께 추는 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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