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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별일없이산다

아빠의 기억 - 빨간 구두 아가씨

몇 일전 '님은 먼곳에'를 보는데 월남 전쟁이 배경이라 그런가..
아빠 생각이 이래 저래 난다.

아빠도 총각시절 월남에 참전을 했었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보병이나 그런건 아니었던 거 같고..
얼핏 기억 나는건 코미디언 서영춘이랑 찍은 거라며 보여주던, 흑백 사진.
권총을 차고 요즘 유행하는 보잉스타일의 일명 나이방을 쓰고 있던 잘 생긴, 아빠의 모습.

아빠는 왼쪽 무릎과 정강이 뼈 사이에 동그란 흉터가 위 아래로 2개가 있었는데,
우리한테 보여주면서는 베트콩이 쏜 총에 맞아서 생긴 총알 자국이라고 했었다.
꽤 오랫동안 그걸 믿었고, 난 그게 너무 신기해서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보기도 했다.
(손으로 누르면 그 구멍으로 종아리 뒷편까지 손가락이 쑥.. 빠지지 않을까 해서..)
머리가 좀 커서는 재밌어 웃는 아빠의 뉘앙스가 먼가 거짓말이란걸 감으로 알아 챘고,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는 더이상 아빠의 종아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의 총알 자국은 내 기억 속 '오랫동안 꺼내지 않을 폴더'로 저장이 되어 사라졌고,
1995년 내 나이 23살. 아빠 나이 53살.
갑작스런 안녕을 맞았다.

그렇게 13년이 흐르고..
문득 만난 영화 한편에서,
예쁜 언니의 노래와 춤에 맞춰 군무를 춰 대는 젊은 군인들을 보노라니
저 속에 함께 있었을 젊은 아빠의 얼굴이 오버랩 되며
베트공이 쏜 총알에 맞았다는 그 총알자국이 오래된 기억의 폴더에서 스프링처럼 튕겨 나오는 것이다.
순간 아빠의 익살이 그립다.
음. 다시 그 총알 자국을 손으로 꾹꾹 눌러 볼 수 있다면...

자, 이번주말엔 아빠를 모시고 영화관으로 고고씽. 하시길~!




ps. 이 노래는 내가 기억하기로 아빠의 18번이다.
아빠랑 노래방을 가 본 기억도 없지만, 술이 거나할 때 종종 들었던 노래. 아빠가 노래를 좀 하셨지.
제목이 "빨간 구두아가씨"였군.  LP버전을 간신히 찾았다.
오늘은 유년으로 가는 기차를 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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