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가지 슬픔 (Ten Thousand Sorrows)
  • 엘리자베스 김
  • 노진선 옮김
  • 대산출판사 / 2001. 7. / 288page

      대체 인간이 "믿음"을 명분으로 자행하는 악행은 얼마나 많은걸까.
     시간과 시대에 따라 그 "믿음"의 진리가 변하는 순간,
     그 변함 속에 남아 있는 수 많은 억울과 고통의 트라우마는
     대체 누가 치유해 줄 것인가.
    

지하철에서 보다가 펑펑 울고 말았다.
만가지로 슬퍼서가 아니라 ('슬픔'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모자르다.)
그녀의 뼛속까지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책 속에서 단 한번 살짝 긴장을 풀 수 있었던 장면.
그녀에게 있어 전부였던 딸 '리'와의 즐거운 한 때를 읽다가 정말 봇물터지듯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중동 지방에서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아버지와 오빠들이 친히 나서 자기의 딸을, 여동생을 살해했다는 - 그들은 그것을 '명예로운 죽음'이라 부른다지. - 뉴스를 가끔 본 적이있다.
그럴 때마다 그 미친 생각이 도대체가 믿기지가 않고 그 미친생각을 '믿음'으로 용인하는 그 미친 사회가 어이없고, 도망치지 않은 그녀도 답답했다. (그들의 믿음을 받아들였다는게)
그리고 한편으론 그 땅에 태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감사했다.

그런데 이런 미친 뉴스.
중동이 아니라 불과 50, 60년전 이 나라에도 통용되었던 '믿음' '관례' 였다는 사실에 완전 기겁했다.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의 어머니가 바로 그 '믿음'의 희생양.
당시 4살? 5살? 이었던 엘리자베스 김은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외삼촌 손에 의해
목 매달아지는 광경을 목격했고 평생 그 트라우마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했다.

깜둥이 사이에 태어난 짐승만도 못한 '튀기'라는 이유로..
그녀의 인생은 실화라는게 정말 믿기지 않는! 치유 불가능의 시간 속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녀에게 있어 '삶'이란 그녀가 주도하는 그녀의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것이었다.

아.. 읽는내내 답답과 분노 속에 맘이 어지러웠고,
대체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종교를 포함하여)
그 가변성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잔혹성을 내포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그러고 보면 '신념'에 근거한 미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마녀사냥이 그렇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잔혹사가 그렇고, 홀로코스트가 그렇고, 대량살상무기가 있을꺼야.. 가 그렇다.

지금 이순간.
내가 믿고 있는건 무엇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건 무엇인가.
그 신념은 100년, 200년이 흘러도 불변할 정의. 진리의 가치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모: 미상 / 부 : 미상 / 이름 : 미상 / 나이 : 미상.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심지어 몇 살인지 조차도 알 수 없는 존재의 불명확함 속에서
평생을 '물음표'와 '삼켜버린 울분' 속에서 고통받았을 그녀를 진정 안아 주고 싶었다.
치유의 과정에 진정 나의 눈물을 보낸다.

*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게임이었으므로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도 우리를 좌절시키지 못했다
(딸과의 유대 장면을 읽는동안 '인생은 아름다워' 생각이 많이 났다. 그녀는 훌륭한 어머니다.)

*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을 지 몰랐다. 우리의 고통도 그와 같을지 몰랐다.
두려움과 희망, 꿈, 슬픔, 이 모든 것들은 안개처럼 녹아버리고 남는 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 혹은 영혼, 혹은 그 무엇이든 간에 그것의 빛과 온기뿐이었다.
나는 이러한 삶속에서 진정 사랑을 원했다. 진정한 충만감과 평화를 원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것들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이 삶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믿음을 버리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본문 중에서 -
Posted by naeb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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