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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취미생활/영화 공연 전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번지점프를 하다
ㅇ 2001년 / 감독 : 김대승
ㅇ 이병헌, 이은주, 여현수, 이범수, 홍수현
ㅇ 로맨스/드라마

연휴 막바지를 보내는 주말.
살짝 포근해진 날씨 때문이었는지,
맘 한자락이 알싸하면서도 코코아처럼 나른한 따뜻함이 밀려오는 영화.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선반에 꽂혀 있는 DVD 중에 하나를 집었다.
7년만에 다시 본 '번지점프를 하다'
다시 본 느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아.. 내가 참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생각.

"다시 태어나도 난 또 너랑 사랑할래.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라는 대사에서 닭살은 커녕 사랑이란 자고로 그런거지!라며 완전 동감을 외치고, "난 이렇게 널 느끼는데, 넌 왜 나를 기억하지 못하니." 라고 울부짖던 이병헌이 안됬어서 눈물 철철이었던 그때와는 달리...
죽어서도 놓치 못하는 그들의 '인연'에 대한 몰입보다는 오히려 통기타와 모닥불의 MT를 비롯한 풋풋한 80년대 풍경의 정겨움이 더욱 눈에 들어오더라.
사랑을 시작하는 이 세상 어느 젊은 커플들이 안 이쁠 수 있겠는가. 그 어느 커플이 절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화를 보면서 예전처럼 몰입하려고 노력해도 되지 않는 한 가지가 바로 그 이들만의 절절함이었다.
17년.. 남자 고등학생으로 환생해서까지 사랑을 나눠야 하는 당위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그런 당위성은 애초에 필요없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이유, 조건, 당위성으로는 말할 수 없는 인연에 대한 영화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손을 꼬옥 잡고 다음 생을 기약하며 번지점프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예전에 흘렸던 짠한 눈물 대신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 (극중 이병현의 와이프는? 기껏해야 네살배기 정도로 가늠되는 그 애기는? 현빈의 부모님은?) 머 이런 현실적인 생각들이 그들만의 사랑을 위로 하고 응원해 줄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어쩌면 사랑이란건 애초에 그렇게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감정인걸지도 모르겠다.

비현실적인 영화가 이제 그냥은 받아 들여지지 않는 내가 현실적이 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영화자체가 현실성을 뛰어넘는 영역의 '인연'과 '환생'을 다룬 너무도 비현실적인 영화인 탓일 수도 있다.

암튼 간만에 꺼내본 영화는 나쁘지 않았고,
이제 저 영화 속 여주인공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니 왠지 다른 모습으로 환생해서 다시금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도 들더라.
연말 연시, 사람 북적한 길거리나 영화관 대신에 이렇게 추억어린 DVD를 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다. 추천.

ps. 이 영화가 김대승 감독의 첫 작품이라고 하니 참 대단하다. (그해 신인영화감독상을 타셨다)
그리고 유지태가 주연한 삼풍백화점 붕괴를 모티브로 한 '가을로'도 이 감독의 작품인데, 아마도 인연이나 환생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것 같다. 감독들은 그런 섬세한 감정의 돌기들이 시간의 바람에 풍화되지도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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