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개청춘
ㅇ 부제: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ㅇ 저자 : 유재인
ㅇ 이순출판사, p264, 2010. 2

날 것 그자체로 쌩쌩하게 까발려주는 직장 초년병의 에세이!

비단 초년병만이 아니라 미래의 '자발적 봉급쟁이'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수년간의 봉급쟁이 생활로 무료함에 빠진 자들이라면, 읽고 위로 받으시길~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에서...

빌브라이슨 이후, 박민규의 삼미수퍼스타즈 이후 제대로 낄낄 거리며 본 에세이다.
자발적 봉급쟁이를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입사 후의 생활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형태인데 글 솜씨가 아주 경쾌하고 재미있다. 아니, 나이 28세, 입사 3~4년차만에 어떻게 이렇게 '직장생활이란?'에 대한 주옥 같은 통찰력을 갖게 된 것일까. 그 재치와 은유 그리고 사색의 힘에 혀를 내두른다. 아마도 한때 언론인을 지망했던 이력이 말해주듯 나름 글쓰기도 좋아하고 인문/사회적 책들을 통해 일찍이 성숙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에피소드가 글 자체로 재미도 있지만 그 근간을 흐르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 눈길이 날카롭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다.

책 읽기를 통해 깜깜하게 지내던 사회를 알게 될 수록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어른들 말씀이 떠오르곤 했는데 이 분이야말로 사회를, 직장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게 아닐까하는 맘 한켠 있다. 직장인이 되어 맹렬히 앞만 보고 질주하던 나름의 즐거움(?)으로 몇 년 더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지. 물론 저자의 말처럼 경제적 효율성을 따진다면 일찌감치 그 안에서의 경쟁을 포기하고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가꾸는 것으로 진로를 수정하는 것도 나름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다.

이쯤에서 과연 이 분은 계속 회사를 다니고 계신가? 하는 궁금함이 드는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ㅎㅎ 어찌 저찌의 경로로 확인한 바로는 여전히 잘(?) 다니고 계시다고 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결혼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아마 다음편은 육아를 통해 보는 사회 비판으로 글쓰기가 계속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책 속에서 ***

어차피 봉급쟁이란 고뇌와 권태 중에서 자발적으로 권태를 선택한 인간들이다. 회사가 지겹다고 말하는 건 생선 반찬 시켜놓고 비리다고 투정하는 것과 비슷하게 염치없는 짓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봉급쟁이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첫째는 직장에서 '빡센' 일만 골라 하는 도전적인 인재가 되는 것이다. 무료함 안에서 고뇌를 창조하란 얘기다. 이걸 견디려면 회사와 본인을 동일시하는 내면개조 작업이 필요하다. 회사의 이익실현이 나의 자아실현으로 여겨지는 순간 권태는 안녕이다... (중략) 다른 하나는 보다 경제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기다. 쉽게 말하자면 가능한 한 설렁설렁 일하는 사원이 되는 것이다. -p44

(가로수가 망가져서 새로 심어야 하는 경우를 언급하는 대목인데 아, 빵터졌음. ㅋㅋㅋ)
... 플라타너스는 한 그루에 60만 원인데 왕벚꽃나무는 100만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집행범위가 커지면 감사실에 불려갈지도 모르는데, 감사관이 좀 고지식하다면 "그냥 플라타너스를 심으면 되지 왜 비싼 왕벚꽃나무를 심으려느냐"는 지적을 듣게 된다. 그러면 왕벚꽃나무길에 왕벚꽃나무가 쓰러졌는데 왜 거기다 플라타너스가 아닌 왕벚꽃나무를 심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서도 그럴듯하게 하나 더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p91

『공감의 심리학』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삶의 비밀이란, 인간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아남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그리움을 나눌 수 있고 거울 반응으로 답해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발견하는 데 있다." -p149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1기니가 가진 힘의 정도는 그 돈에 대한 이웃사람의 필요나 욕망에 정확하게 좌우된다. 따라서 보통의 사업적 경제학자가 말하는 부자가 되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여러분의 이웃을 계속 가난 속에 방치해두는 기술인 것이다. -p191

ps. 책 속에 많은 책들이 인용으로 등장하는데, 읽어본 책들도 있지만 못 본 것들도 꽤 많다. 나름 관심 분야들이 많아 덕분에 빌리기도, 구매하기도... 이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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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eb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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